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31년 음력 10월 초순부터 음력 12월 하순까지 약 3개월에 걸쳐 장흥군 남면 운수리 임영득(任永得)의 집 객실에서 고삼현(高三鉉), 고희석(高喜錫)과 함께 야학을 개설했다. 이들은 야학에 참여한 학생들을 지도 계발했으며, 반제 및 공산주의 사상과 정치혁명가를 가르쳤다.
1933년 5월 중순 김홍배(金洪培), 황동윤(黃同允) 등이 해남군(海南郡) 소원면(小原面)에서 전라남도 내 혁명운동의 전선 통일의 기관으로 비밀결사인 전남운동협의회를 조직했다. 이들은 사무부, 조직부, 조사부, 구원부 4부를 설치해 책임을 분담하고 농민조합 조직, 소작인 투쟁, 동맹파업 등 구체적인 활동방법을 협의했다. 최두용은 1934년 1월 장흥을 비롯해 해남, 완도, 강진(康津), 영암(靈巖) 일대애 영향을 미치고 있던 전남운동협의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최두용은 야학을 개설해 공산주의 사상을 계몽한 혐의로 체포됐다. 1933년 2월 14일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 장흥지청(長興支廳)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10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전남운동협의회 활동을 하다가 1934년 9월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다시 체포됐다. 1935년 12월 21일 예심종결결정에 의해 면소됐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광주지방법원:1933. 2. 14)
-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1934.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