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20년 10월 전남 광주군(光州郡)에서 조선민족대동단(朝鮮民族大同團, 일명 大同團) 간부 신덕영(申德永) 등과 함께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는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조선민족대동단은 1919년 3월 말경 서울에서 전협(全協)의 집에 모여 결성된 비밀결사였다. 첫째, 한국을 일본제국의 통치에서 이탈하게 해 독립국을 형성하게 할 것, 둘째, 세계의 영원한 평화를 확보할 것, 셋째, 사회주의를 철저히 실행할 것 등의 3대 강령을 내걸었다. 김가진(金嘉鎭)을 총재로, 귀족ㆍ관리ㆍ유학자ㆍ종교인ㆍ상공인ㆍ청년ㆍ학생ㆍ부녀자 등 각계각층의 사회단체 대표들로 구성되었으며, 전국 각지와 만주에 지부를 설치하고 비밀 유지를 위해 점조직으로 운영되었다. 1919년 4월부터 1년간 지하문서를 배포했으며, 『대동신보(大同新報)』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1920년 이동녕(李東寧)ㆍ박은식(朴殷植)의 지시로 국내로 들어온 신덕영은 군자금 모집을 위해 대동단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최양옥(崔養玉)ㆍ노형규(盧衡奎)ㆍ노석중(盧錫仲) 등을 동지로 규합하여 간부진을 구성하고 1920년 7월경부터 활동하였다. 또한 노형규와 협의하여 미리 전남 지역 부호(富戶)들에게 군자금을 준비하라는 문서를 보내기로 하고, 전남으로 내려와 광주군 본촌면(本村面) 일곡리(日谷里)에 있는 노석중의 집을 활동의 근거지로 삼았다. 이후 유선주(劉善柱, 일명 박일봉)와 조병렬(曺秉烈) 등을 동지로 규합하고 광주ㆍ화순ㆍ곡성ㆍ담양ㆍ보성군 등 전남 각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조병철은 같은 해 10월경 신덕영의 동지가 되어 양인묵 등을 동지로 규합하였다. 그리고 양인묵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할 부호로 양지봉(梁志鳳)ㆍ양하묵ㆍ임승호(林承鎬)ㆍ민영두(閔泳斗)ㆍ기근섭(奇近燮)ㆍ박동춘(朴東春) 외 여러 명을 추천받아, 신덕영에게 그 명단을 건네주어 미리 문서를 발송하도록 권유하는 등의 지원을 하였다.
1921년 5월 31일 광주지방법원(光州地方法院)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法院 : 1921. 5. 31)
- 受刑人名簿
- 東亞日報(1921. 5. 1, 6. 4)
- 每日申報(1920. 12. 21)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562면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申德永, 조선민족대동단, 독립대동단 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