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함경북도 명천군 하고면(下古面) 출신이다. 1919년 3월 15일 명천군 하가면(下加面) 화대동(花臺洞)에서 수백명의 군중들과 함께 만세시위를 벌였다. 특히 최경남은 하고면 면사무소와 헌병대에 가서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같은 해 11월경 중국 북간도로 망명하였으며, 1920년 2월 부동(釜洞)에서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에 가입했다. 대한국민회 제2지방회장 김일제(金一濟)와 함께 6월경 권총을 휴대하고 국내로 들어왔다.
이후 함경북도 종성군 고읍면(古邑面) 낙생동(洛生洞)‧용산동(龍山洞)‧중봉동(仲峯洞) 등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했다. 고읍면의 정인근(鄭仁瑾)‧김진원(金鎭源)‧차병선(車秉善) 등에게 독립운동자금 233원을 모집했다.
이처럼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 매진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0년 12월 10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공갈’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항소하여 1921년 1월 2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같은 죄목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공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복심법원 : 1921. 1. 22)
- 조선일보(朝鮮日報)(1921. 1. 21)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