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고영택은 1924년 1월 서울 장교정(長橋町)에 있는 공연규(孔兗圭)의 집에서 이정섭(李禎燮) 등과 함께 ‘조선인으로서의 사상에 기초하여 조선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비밀결사 내집당(內集黨)을 조직하였다. 내집당은 첫째, 국내 각지의 부호(富戶)들로부터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여 중국 상하이(上海)에 있는 대한민국임시정부로 보내고, 둘째, 독립사상을 고취하는 문서를 작성 배포하며, 셋째,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명을 받아 일제의 관공서를 폭파할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이러한 목적을 실행하기 위해 내집당에서는 당장(黨長) 이정섭, 부당장 김시홍 이하의 조직체계를 갖추고 당원명부(黨員名簿) 및 규칙서(規則書) 등을 작성하였다. 이때 외무부장은 김공렬, 서기는 김익배, 회계는 공연규, 고문은 박영진 등이 맡았다. 고영택은 내무부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내집당에서는 충청남도 천안군(天安郡) 등지를 중심으로 유신상조조합(有信相助組合)이라는 금융기관과 유사한 조합을 설립한 후 경향 각처에서 조합원을 모집하였다. 조합원 개인이 10~30전 정도씩 출자하는 방식으로 운동자금을 마련하기로 하고, 각지에서 조합원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5월 중순경 내집당에서는 한국인의 독립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국권회복에 관한 문건을 작성하여 인쇄하였다. 당원들은 관공서 폭파에 필요한 폭탄 제조법을 공부하여 시험하고, 각기 방면을 나누어 돌아다니면서 제반 설비를 진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내집당에서는 조선총독부 경무국(警務局)에서 제작한 국내외 「국외불온단체분포도(國外不穩團體分布圖)」, 「경비기관배치도(警備機關配置圖)」 등이 동양당석판주식회사(東洋堂石版株式會社)에 넘겨져 인쇄될 때 중간에 이를 빼내서 활용하였다.
일본 경찰에 체포된 후 신문과정에서 고영택은 이 지도를 본 순간 중국 땅 곳곳에서 한국인이 활동하고 있다는 생각에 매우 기뻤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활동하던 중 내집당의 거사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목적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같은 해 8월 19일 천안경찰서에 체포되었다. 10월 18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0월(미결구류 30일 통산)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같은 달 20일 공소(控訴)를 제기하였으나 2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를 취하하였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후 1925년 7월 30일 이정섭 등 동지 6명과 함께 형 집행 만기로 풀려났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공주지방법원:1924. 10. 18)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형사공소사건부(刑事控訴事件簿 )
- 동아일보(東亞日報)(1924. 10. 29, 1925. 8. 4)
- 시대일보(時代日報)(1924. 10. 29)
- 매일신보(每日申報)(1924. 8. 23, 10. 29, 11. 6)
- 대정大正 8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사건(違反事件) 검거에 관한 건(공주지방법원 검사정, 1924. 9.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