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일본 (日本) 경응대학 (慶應大學) 에 재학하던 중 3․1운동에 가담하여 퇴학 (退學) 을 당하고, 동년 10월 중국 (中國) 상해 (上海) 로 건너가 대한민국 (大韓民國) 임시정부 (臨時政府) 인사와 접촉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27년 경남 (慶南) 울산군 (蔚山郡) 언양면 (彦陽面) 에서 농민조합 (農民組合) 집행위원 (執行委員) 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1928년 9월 징역 6월(징역 4월 15일 감형 (減刑) ) 집행유예 (執行猶豫) 1년을 받았으며, 1931년 7월경 양산군 (梁山郡) 상서면 (上西面) 교리 (校里) 에서 권대형 (權大衡) 등과 함께 적색농민조합 (赤色農民組合) 경남동부위원회 (慶南東部委員會) 를 결성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어 1933년 5월 징역 2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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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신학업은 1917년 언양공립보통학교(彦陽公立普通學校)를 졸업하고, 1918년 일본으로 가 1919년 3월 일본 게이오대학(慶應大學) 상과 야학부에 재학하던 중, 3.1운동에 가담하여 퇴학을 당하였다. 같은 해 10월 중국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인사들과 접촉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27년 경남 울산군 언양면(彦陽面)에서 농민조합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이로 인해 신학업은 소위 폭력행위 처벌에 관한 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1928년 9월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받았다.
1931년 7월경에는 양산군 상서면(上西面)에서 최해봉(崔海鳳) 등과 함께 권대형(權大衡)을 만나 적색농민조합(赤色農民組合) 경남동부위원회(慶南東部委員會)를 결성하여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고 신사회 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결사를 조직했다. 신학업은 이와 같이 활동하다 다시 체포되어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1933년 5월 징역 2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東亞日報(1932. 8. 29, 1933. 1. 28)
- 倭政時代人物史料(朝鮮總督府) 제1권
- 檢察事務에 關한 記錄(3) (鐘路警察署, 1926. 4. 19)
- 判決文(大邱覆審法院:1933. 5. 9)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