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조형진은 1925년 11월부터 경남 울산청년연맹(蔚山靑年聯盟) 집행위원, 1926년 울산기자단(蔚山記者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5월 16일 서울에서 개최된 조선사회단체중앙협의회(朝鮮社會團體中央協議會)에 울산자오회(蔚山子午會) 대표로 참석하였다.
1927년 10월 30일 울산군 방어진(方魚津)에서 열린 울산사회단체간담회(蔚山社會團體懇談會)에서 울산청년동맹(蔚山靑年同盟)을 조직할 창립 준비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창립 준비를 위해 동년 12월 8일~9일까지 울산면(蔚山面) 성남동(城南洞) 김정국(金正國)의 집에서 울산청년동맹의 강령과 정책 등을 세웠다. 강령의 내용은 조선청년 대중의 정치적 경제적 개방, 미조직된 조선청년 대중의 공고한 조직을 촉성, 조선청년 대중을 계급적 민족적으로 교양 훈련을 기함 등이었다. 정책의 내용은 조선민족의 전체적 이익을 대표할 전민족적 단일당 수립, 이것의 수립을 위해 신간회(新幹會)를 적극적으로 지지, 청년남녀의 언론집회 및 결사 출판의 자유 등 이었다. 이 문서를 울산군 하상면(下廂面) 병영청년회관(兵營靑年會館)에서 70부 인쇄하였고, 1928년 5월 16일 울산청년동맹 창립총회에서 배포되었다. 이로 인해 조형진은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30년 9월 신간회 울산지회(蔚山支會) 대표회원을 역임하는 등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조선사회단체중앙협의회 창립대회에 관한 건(1927. 5. 17) 思想問題에 대한 調査書類(2)
- 신간회대표회원 선거상황에 관한 건(1930. 10. 11) 思想에 關한 情報綴 제10책
- 中外日報(1927. 6. 3, 1927. 11. 7, 1929. 5. 7, 6. 29·11. 19, 1930. 4. 15)
- 東亞日報(1922. 9. 1, 1927. 11. 4, 1929. 4. 10, 5. 11, 11. 21·11. 23)
- 時代日報(1925. 11. 25·12. 13·12. 25, 1926. 5. 7·6. 24)
- 判決文(大邱覆審法院:1929. 11. 16)
- 북풍회계 잔당의 동정에 관한 건(1927. 5. 19) 思想問題에 대한 調査書類(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