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서울 권농동(勸農洞) 57번지에서 태어났다. 1920년 12월 중국 안동현(安東縣)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내 특파원 이병규(李秉珪)로부터 독립운동자금 모집을 권유받았다. 이병규는 이철응과 조병창(曺秉昌)에게 서울에서 독립운동자금을 제공할 수 있는 부호를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이철응과 조병창은 12월 26일 서울로 들어와 독립운동 자금 모금 대상을 찾아 이병규에게 알렸다. 이에 이병규가 1921년 1월 6일 서울로 들어와 이철응과 함께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일제 경찰의 삼엄한 감시로 활동이 발각되어 1월 10일 서울 동대문 밖에서 체포되었다.
이철응은 1921년 5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고 1921년 8월 17일 출옥했다. 1925년 7월 서울에서 백남신(白南信)‧조영구(趙英九) 등과 함께 소년‧소녀 월간잡지 『청구(靑邱)』 발행을 기획했다. 이를 위하여 10월경 주지서(主旨書)를 인쇄했다가 체포되어 훈계‧방면되었다.
정부는 202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 : 1921. 5. 25)
- 조선일보(朝鮮日報)(1921. 1. 26, 2. 1, 3. 12, 3. 16, 1925. 10. 29)
- 매일신보(每日申報)(1921. 1. 26, 2. 1, 1925. 10. 27, 12. 21)
- 동아일보(東亞日報)(1921. 2. 23)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
- 검찰사무에 관한 기록(1)-기부금(寄附金) 모집(募集) 취체(取締) 규칙(規則) 위반(違反)에 관한 건(경성종로경찰서장 : 1925. 12.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