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8권(2023년 발간)
이병규의 출생지는 서울 효자동(孝子洞)이고 본적은 경기도(京畿道) 부천군(富川郡)이다. 1920년 중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大韓民國臨時政府) 노동총판(勞動總辦) 안창호(安昌浩)로부터 독립운동자금 모집을 권유받았다.
안창호는 이병규에게 인삼 행상과 같은 사소한 일을 하지 말고, 임시정부를 위한 독립운동에 매진하라고 조언하였다. 이를 승낙한 이병규는 9월 30일 임시정부 요원 정인찬(鄭仁贊)으로부터 내무총장 이동녕(李東寧)의 사령서(辭令書), 독립운동자금 영수증, 『독립신문』 각 5매를 받았다.
11월 30일 독립운동 자금 수집을 수행하는 임시정부 특파원이 된 이병규는 중국 안동현(安東縣)의 이철응(李喆應), 조병창(曺秉昌)과 협력했다. 이들은 12월 26일부터 서울로 와서 군자금을 모집 대상을 알아보았다.
이를 바탕으로 이병규는 1921년 1월 6일 서울로 들어와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착수하였다. 그러다가 1월 10일 서울 동대문 밖에서 경기도 제3부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921년 5월 2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2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 : 1921. 5. 25)
- 조선일보(朝鮮日報)(1921. 1. 4, 1. 26, 2. 1, 3. 12, 3. 16)
- 매일신보(每日申報)(1921. 1. 15, 1. 26, 2. 1)
- 동아일보(東亞日報) (1921. 2. 23, 5. 13)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