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07년 일제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파견한 고종황제의 특사를 문제 삼아 고종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나아가 군대해산을 단행하여 한국의 무장력을 해체하였다. 해산된 대한제국 군인들은 자결로 저항하거나 민족적 이해에 눈을 뜬 애국적 군대로 탈바꿈하여 항일 의병투쟁에 참여하였다. 황제의 강제퇴위와 군대해산을 계기로 촉발된 후기의병은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하면서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무장력을 바탕으로 전국에서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처럼 후기 의병이 봉기한 1907년 8월 중순 경기도 여주군 지역에서도 의병이 일어나자 가평경찰관주재소 소속 순사보조원이 강원도 원주로 파견되는 수비병의 길 안내로 출장을 갔다 돌아왔다. 순사보조원이 8월 13일 정오경 여주군 주내면(州內面) 단현리(丹峴里)에 이르렀을 때 의병들이 그를 습격하였다. 순사보조원이 의병들의 추적을 피해 연못으로 뛰어들자 지용봉은 이재현(李在賢)·장천석(張千石)과 함께 돌을 던져 그를 처단하였다.
지용봉은 이 일로 체포되어 1919년 11월 19일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에서 이른바 ‘살인죄’로 징역 7년을 받고 항고하였으나 1919년 12월 8일 경성복심법원(京城覆審法院)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고, 1924년 1월 26일 징역 5년 6월 24일로 감형되었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경성지방법원:1919. 11. 19)
- 판결문(경성복심법원:1919. 1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