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7년 경기ㆍ충청ㆍ전북ㆍ경북 등지에서 김동신(金東臣)과 함께 의병 400여 명을 이끌고 활동하였다.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하면서 해산 군인을 중심으로 정미의병항쟁이 시작되었다. 당시 김호경은 '국가의 위기에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겠다'는 뜻의 격문을 사방에 알려 의병 50여 명이 모이자, 김동신 등과 연합하여 4백여 명으로 의진을 개편하였다.
김동신 등과 함께 1907년 6월경부터 음력 9월까지 경기ㆍ충청ㆍ전북ㆍ경북 등지에서 활동했다. 1907년 7월 30일 수십 명의 의병을 거느리고 충북 음성군(陰城郡) 동도면(東道面) 기곡리(基谷里)에서 군자금을 모집했다. 1907년 음력 9월 2일경 전북 장수군(長水郡) 내에서 일제 토벌대와 전투를 벌였으며, 같은 달 6일경에는 경북 상주군(尙州郡) 일대에서 일제 수비대와 약 2시간 동안 격전을 벌이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9년 8월 20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이른바 내란죄 및 강도죄로 종신유형(終身流刑)을 받고 1910년 8월 대사령(大赦令)으로 풀려났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公州地方裁判所 淸州支部 : 1909. 8. 20)
- 受刑人名簿
- 刑事控訴事件簿
- 朝鮮總督府官報(1910. 9.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