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5권(1988년 발간)
1901년 대한제국의 주독(駐獨), 주불(駐佛) 공사관 참사관을 역임하고 귀국하여 이천군수 등을 지내다가,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북경(北京)으로 망명하여 항일활동을 하였다.
1913년 도미(渡美)하여 박용만(朴容萬)과 같이 하와이에서 조선독립단(朝鮮獨立團 Korean Independence League)을 조직하였으며, 1920년 7월 하와이 지방총회에서 지단장에 선출되어 기관지 "태평양시사"를 발행하는 등 활동하였다. 그는 또한 친동생인 상해임시정부 외무총장 조소앙(趙素昻)과 긴밀한 연락을 유지하며 외교 및 홍보활동을 전개하였다.
1932년 4월 그는 조소앙으로부터 중한동맹회(中韓同盟會) 조직의 선언 및 입회용지의 송달을 받고 하와이 재류 동지를 권유하여 가입시켰으며, 임시정부와 유대를 갖고 독립운동을 계속하였다. 동년 10월에는 보다 본격적인 활동을 위하여 미국 기선 프레지던트 후우버호를 타고 상해로 가던 도중 신호(神戶)에 기항하였다가 이 정보를 입수한 일경에게 체포되었다.
1933년 1월 서울로 압송된 그는 1933년 4월 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그는 너무나 검소하여 재미(在美) 20여년간 넥타이 한 개만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출옥 후 옥고의 여독으로 1937년 3월에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70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3권 604면
- 동아일보(1933. 1. 12, 4. 1)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9권 52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3권 116 430 457면
- 기려수필 428 429 430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74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