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강원도 영월 출신으로 경북 북부지역의 소백산을 중심으로 풍기, 순흥, 영주 등지에서 활동하던 김상태의진(金相泰義陣)에서 활동하였다.
김상태는 강원도 삼척 출신으로 1896년 창의한 유인석의진(柳麟錫義陣)과 1907년 창의한 이강년의진에 참여하였다. 1907년 이강년의진은 강원도의 이인영(李麟榮)과 경기도의 허위(許蔿)가 이끄는 의병진과 긴밀한 연락을 취하며 풍기, 문경, 단양, 연풍, 영월 등 소백산맥 일대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격파하며 활동하였다. 이때 이강년의진의 예하 부대장은 김상태, 변학기, 정경태, 정연철, 백남규, 성익현 등이었는데, 김상태는 중군장(中軍將)으로 활약하였다.
1908년 7월 이강년이 체포되어 순국한 뒤 김상태는 독자적으로 부대를 편성하여 강원, 경상, 충청 등 소백산 일대에서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1911년 6월 14일 경북 순흥의 연화동(蓮花洞)에서 변절자의 밀고로 일본군 대위 편종겸(片宗謙)이 거느린 토벌대(討伐隊)의 야습을 받고 체포되어 단식투쟁으로 항거하다가 옥사하였다.
김동운은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下東面) 미사리(未似里) 출신으로 1909년 음력 1월 9일부터 1911년 음력 4월 20일까지 김상태부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김동운은 1909년 음력 4월 20일 김상태부대 60여 명과 함께 순흥군 봉양면 남대동에서 밀정 조만실(趙萬實)을 처단하였으며, 1910년 음력 4월 20일경 순흥군 단산면 병산리에서 밀정 김해수(金海秀)를 처단하고 황진사로부터 엽전 400냥을 모금하였다. 그리고 1910년 음력 4월 30일경 의병 황모(黃某)가 부녀자를 강간하는 등 의병의 체면을 훼손하였다 하여 처단하기도 하였다.
김동운은 1911년 음력 4월 체포되어 공주지방재판소(公州地方裁判所) 청주지부(淸州支部)에서 소위 강도 및 살인으로 징역 15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公州地方裁判所 淸州支部:1912.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