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일본 동경 및 국내에서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하였다. 백행준은 신의주청년동맹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1931년 8월 초순 신의주에서 송기석(安基錫)의 권유로 재일 유학생 계경순(桂瓊淳)·김병권(金炳權) 등과 같이 현재의 일본 제국주의를 부인하고 신사회를 건설하려고 비밀결사 ‘신의주공장노동자조합’을 조직하였다. 이 조직은 신의주의 각 공장노동자를 규합하여 임금인상 및 직공해고 절대반대, 임금인상 및 대우개선요구, 8시간 노동제 실시의 관철 등을 목표로 하였으며, 집행부·자유노동부·농민부·여자부·출판부 등의 부서를 두고, 기관지 『공장신문(工場新聞)』을 비롯하여 『노동자농민』이라는 소책자를 등사 인쇄하여 선전 계몽활동에 주력하였다.
백행준은 이처럼 항일운동과 노동자의 권익을 향상시키는 활동을 전개하다가 1931년 10월경, 부친이 사망하자 집에 들렀다가 신의주경찰서 고등계 형사에게 체포되었다.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예심을 종결하고 공판에 회부되어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32년 5월 9일 오후 7시경 그동안 폐병으로 고생하다가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東亞日報(1931. 10. 24)
- 東亞日報(1932. 5. 15)
- 韓國勞動運動史(金潤煥·金洛中, 1970) 91면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