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최인근은 1935년 경북 김천에서 신사회 건설과 독립운동을 위해 조선공산당 김천그룹재건협의회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김천그룹재건협의회는 1928년 국제공산당으로부터 조선공산당 지부의 승인이 취소된 이후인 1931년 2월 지역 전위 정치기구로 결성되었으며, 당 재건의 물적 토대를 강화하기 위해 운동방침으로 적색농조·적색노조·반제동맹을 건설하고자 했으며, 독서회를 통해 신사상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1932년 2월 조직이 노출되어 와해되었다. 이후 관련 운동가들이 검거되었다가 기소유예로 석방된 이병일(李秉一)의 주도하에 백낙도(白樂道)·나정운(羅鼎雲)이 중심이 되어 1933년 4월 김천그룹재건협의회를 결성, 각 부문·계층별로 조직을 나누어 대중을 혁명적으로 동원하고자 하였다. 그러다가 1935년 4월 김천소비조합의 주도권을 획득하자 일제는 곧바로 검거를 시작하여 1935년 5월 1일부터 청년 10여 명이 검거되고, 총 사건 관련자 300여 명이 체포되는 조선공산당재건운동상의 초유의 일로 기록되었다. 최인근은 1935년 5월 30일 취조 중에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東亞日報(1935. 12. 24·6. 2·6. 27)
- 김천지방의 사회주의운동과 조선공산당 재건운동(김도형, 1993) 338면
- 朝鮮中央日報(1935. 6. 1, 1936. 3.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