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28년 6월 19일 경상남도 마산부(馬山府)에 위치한 호신학교(濠信學校) 3학년 재학 중 학생들에게 인망을 받고 있는 교사의 해직에 반대해서 동맹휴학을 주도했다. 나영철은 참가했던 학생 27명과 교사 2명 그리고 마산청년동맹 간부 1인과 함께 체포됐다.
이후 나영철은 1929년 3월 마산소년동맹(馬山少年同盟)과 마산청년동맹(馬山靑年同盟)에 가입해서 활동했다. 같은 달에는 서울로 올라와 사립 중앙기독교청년회관(中央基督敎靑年會館)에 입학했다. 다음 해인 1930년 4월, 경성 중앙기독교청년회관 2학년이었던 나영철은 이종림(李宗林)을 통해 사회주의 사상과 실천운동에 공명하고, 이후 비밀결사 조직 결성에도 동의했다.
1930년 8월에는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마산 지역의 마산청년동맹 집행위원 최달수와 함께 비밀결사 독서회 조직을 도모했다. 그러다 1935년 2월 사상사건과 프롤레타리아 문학 연구 및 조직 건설 혐의로 검거됐다.
나영철은 1928년 7월 동맹휴학을 주도해 그를 포함한 학생 14명 및 청년 간부 1명과 함께 기소됐다. 1928년 10월 25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이른바 ‘폭력행위(暴力行爲) 등 처벌(處罰)에 관한 건(件) 위반’으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또한 학교에서 퇴학처분을 받았다.
1930년에는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에 참여했다는 혐의로 종로경찰서에 검속됐으며, 같은 해 9월 공판에 회부됐다. 1932년 3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35년 5월에는 마산・함안 중심의 문학청년 비밀결사 관계자 5명과 함께 수감됐고, 같은 해 10월 공판에 회부됐다. 재판 결과는 확인되지 않으나 검거에서 판결일까지 1년 3개월 정도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1928. 8. 10)
- 매일신보(每日申報)(1928. 8. 12, 1930. 9. 3, 9. 10, 9. 16, 9. 18, 1932. 2. 26, 3. 3, 4.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