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32년 8월 11일 오후 8시경 거창면 동동(東洞)의 황강(黃江) 강변에서 거창공립보통학교 동문인 신양재(愼陽縡), 조재봉(曺在奉), 친구 심시돌(沈時乭)과 모였다. 이 자리에서 신양재가 “현대사회는 불공평하기 때문에 우리들은 마르크스 등의 공산주의자의 말을 따라서 공산주의 국가 건설에 노력해야 하며, 그 수단으로 먼저 농민조합을 조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갑수는 이에 공감하고 실행사항에 대해 협의했다.
8월 17일 오후 8시경 같은 면 중동(中洞)의 황강 강변에서 신양재와 함께 거창공립보통학교 스승 함옥정을 만났다. 함옥정은 “우리들은 먼저 경제운동으로 농민운동을 일으키고 점차 정치운동으로 옮겨서 불공평한 현 사회제도를 타파하고 러시아와 같은 공산주의 국가 건설에 노력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이에 공감하고 목적을 향해 서로 노력할 것을 결의했다.
박제순은 10월 초순경부터 소위 ‘낙동강농민조합 거창지부 사건’과 관련해 함옥정을 비롯해 동지들과 함께 체포됐다. 1933년 6월 30일 부산지방법원(釜山地方法院) 진주지청(晉州支廳)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1년 3월을 선고받았다. 공소를 제기해 8월 3일 대구복심법원(大邱覆審法院)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대구형무소(大邱刑務所)에서 출옥했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判決文)(대구복심법원:1933. 8. 3)
-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1933. 6. 26, 7.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