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24년 9월 서울에서 대한통의부(大韓統義府) 경성지부원(京城支部員)으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1924년 9월 초순경 홍경식(洪景植)ㆍ이병욱(李丙旭)ㆍ박정양(朴貞陽)과 함께 중국 봉천성(奉天省) 흥경현(興京縣)에 근거를 둔 대한통의부 단원으로 입국한 현익철(玄益哲)과 협의하여, 대한통의부 지부를 경성(京城)에 설치하였다. 이들은 대한통의부 경성지부 명의의 인장을 조각하고 협조문을 작성하여 군자금을 모집하기로 계획하였다.
1924년 9월 27일 오후 8시경 홍경식ㆍ이병욱ㆍ박정양과 함께 서울 창성동(昌成洞) 안도(安濤)의 집에서 대한통의부 경성지부원임을 밝히며 군자금을 요구하여 38원을 모집하고, 10월 2일부터 11월 7일 사이에도 3회에 걸쳐 700원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10월 14일 적선동(積善洞) 이경세(李慶世)에게서 군자금 200원, 같은 달 24일에는 100원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음력 9월 20일 효자동(孝子洞) 남작(男爵) 김교신(金敎莘)에게서 115원, 11월 3일 청진동(淸進洞) 민용호(閔溶鎬)에게서 200원을 모집하였다. 그리고 1924년 10월 10일과 26일 전남 담양군(潭陽郡) 창평면(昌平面) 삼천리(三川里)에 거주하는 고하주(高廈柱)ㆍ고광일(高光馹), 1924년 10월 27일에는 충북 진천군(鎭川郡) 진천면(鎭川面) 읍내리(邑內里)에 거주하는 박승구(朴勝龜)와 충남 논산군(論山郡) 광석면(光石面) 신당리(新堂里)에 거주하는 윤희중(尹希重)에게 대한통의부 경성지부 명의의 협조문을 우편으로 보내고 군자금을 교부받으려 하였다.
1924년 11월 10일 경기도 경찰부 형사과에 체포된 뒤, 1925년 5월 2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 및 강도죄, 공갈죄로 징역 7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時代日報(1925. 5. 15)
- 豫審終結決定書(京城地方法院 : 1925. 3. 6)
- 判決文(京城地方法院 : 1925. 5. 23)
- 受刑人名簿
- 每日申報(1924. 11. 13)
- 朝鮮日報(1924. 11. 13,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