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김인상은 1920년 음 8월경, 경북 영양군 석보면에서 차경석(車京錫)을 교주로 하는 흠치교의 8인조에 가입,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독립자금으로 치성비를 납부·모금하였다.
흠치교는 1901년 강일순(姜一淳)이 세운 종교로서, 주문에 ‘흠치흠치’라는 말이 있어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 흠치교는 민족적 색채를 띠고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측면이 강하여 일제의 감시와 탄압을 받았다. 이 교의 조직은 교주 차경석(車京錫)이 있고, 그 아래에 60인의 고문이 있었으며, 고문 아래에 6인조-12인조-8인조-15인조 등의 조직을 갖추고, 각각 30원-15원-10원-5원의 치성비(致誠費)를 내어 일부는 제사 비용으로 쓰고, 나머지는 전라도 정읍의 본부에 보내져 독립운동 자금으로 쓰였다. 교도들은 1924년에 교주 차경석이 계룡산에 도읍하고 황제에 취임할 것이며, 이때를 기하여 국외의 독립운동단체와 호응하여 일제히 일어나 독립운동을 개시하여 조선독립의 희망을 관철시킬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계획 하에 교도를 조직하고 독립자금의 모집에 노력하였다.
김인상은 8월 10일 김정기(金正炁)의 권유로 이정호(李廷浩)·여성백(余性白)과 함께 영양군 석계면 소계동 김정기의 집 뒷산에서 서로가 일심동체임을 서약하고 8인조의 교도로 가입하였다. 이때 치성비 10원을 기부하고, 소계동 부근의 박두환(朴斗煥) 외 여러 명에게 입교를 권유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21년 4월 22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소위 제령 제7호(정치범처벌령) 위반으로 징역 1년(미결구류 120일 통산)을 선고받았으나 이에 불복하고 상소, 11월 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안동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그후 1922년 7월 31일에 출감하였고, 출감 후 1927년에 석보면 소계(素溪)여자학원의 교사로 활동하는 등 농민야학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大邱地方法院 安東支廳:1921. 6. 2)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0권 471면
- 判決文(大邱覆審法院:1921. 11.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