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김방수는 1941년경 전북 고창(高敞)에서 신강수원(神江壽元) 등과 교유하면서 사상적 영향을 받아, 조선 독립의 희망과 일본의 패전을 예상하고 독립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1942년 6월경 서울에서 신강수원을 만나, ‘자신은 연극을 연구하는 배우이다. 넓게 조선 각지를 돌아다니며 민심의 움직임을 탐지함과 동시에 조선역사극을 연출하여 조선 민중의 민족의식 고양에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그 실천을 위해 노력하였다.
이후 김방수는 전북 고창, 전남 장성(長城) 일대에서 항일운동에 참여할 동지들을 규합하는 한편, 만주의 항일운동 상황과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전을 예상하는 말을 전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었다.
김방수는 1944년 9월 25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및 육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全州地方法院:1944. 9.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