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대전공립제2보통학교(大田公立第2普通學校)를 졸업하고 1931년 4월 1일부터 군시제사공장에 고용돼 일했다.
1932년 10월 중 송태빈(宋兌彬) 등과 함께 공장 남성 숙소에서 박병기(朴炳琪), 김지성(金知成)에게서 낮은 임금, 질나쁜 식사, 장시간 노동 등에 대해 비판적인 얘기를 들었다. 이어 공산주의 사회 건설 및 노동자 단결과 투쟁 실행을 권고받았다.
11월 4일 군시제사공장 남성 노동자 기숙사 방 교체에서 한국인이 차별적인 대우를 받자 이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기숙사장과 간사의 조치를 비판하는 데 합류했다. 11월 6일 오후 6시 30분경 남성 노동자들이 모여 일본인 기숙사장과 간사에게 응징을 하기로 협의했다. 또한 본인들의 요구사항을 기재하고 연명하기로 했다. 서상복은 이병철(李炳哲) 등과 함께 간사의 방에 들어가 간사를 응징하는 데 가담했다. 11월 7일 수십 명의 노동자들이 작업 개시 종이 울렸으나 작업에 들어가지 않고 기숙사 본관 제6호실에 모여 동맹파업을 결의했다.
서상복은 충남전위동맹이 관여한 군시제사공장 기숙사의 항일 기운을 기회로 동맹파업을 주도하다가 체포됐다. 1934년 3월 31일 전주지방법원(全州地方法院)에서 이른바 ‘폭력행위(暴力行爲) 등 처벌(處罰)에 관한 건 위반, 상해(傷害)’로 인해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전주지방법원:1934. 3. 31)
-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1933. 6.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