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40년대에 전주사범학교(全州師範學校)의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민족차별을 경험하면서 점차 반일의식을 갖게 되었다. 1943년경부터 오스기 사카에(大杉榮)의 『자유의 선구(先驅)』·『조선소사(朝鮮小史)』·『조선사담(朝鮮史談)』 등을 읽고, 조선이 과거 독립국가로 존재한 사실과 당시 일본이 주창하던 ‘내선동조동근론(內鮮同祖同根論)’이나 ‘내선일체론(內鮮一體論)’ 같은 것은 도저히 구현될 수 없는 허위임을 알게 되었다. 이에 조선민족의 해방을 위해서는 조선을 독립시켜야 한다고 판단하고, 동교(同校)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43년 8월부터 12월 사이에 자택에서 여러 차례 전주사범학교 학생 유종남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얘기를 하고 함께 독립운동에 매진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로부터 큰 감화를 받은 유종남은 김일성(金日成)과 황용순의 부하가 되어 독립운동에 매진하겠다고 결심하고, 동료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사이에 황용순은 유종남에게 “조선인은 현재 일본인에게 압박당하고 있으므로 우리가 참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장차 어떻게 해서라도 조선을 독립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장차 소·일 전쟁이 일어나면 여수항(麗水港)에 상륙한 일본군은 반드시 이 도로를 통과할 것이다. 현재 실시 중인 도로확장공사도 그때 전차(戰車)의 통행을 예측하여 착수하고 있는 것이다” 등의 얘기를 했으며, 이 말에 유종남은 “그때는 이곳에서 돌을 떨어뜨려 일본군의 통과를 방해하자”라고 응하기도 했다.
1944년 들어서도 여러 차례 모임을 갖고 ‘소·일 전쟁’이 일어나면 일본을 패전으로 이끌고 서로 제휴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로 협의하였다. 1944년 1월 2일에는 전라북도 완주군(完州郡) 화산면(華山面) 화월리(化月里)에 있는 서원상대(西原相大)의 집에서 황용순은 유종남에게 “우리 청년은 크게 조선독립의 사상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조국이 없는 우리에게는 축제일도 없으니 일본인의 기쁜 축제일에는 쓸쓸함을 참을 수가 없다. 손기정(孫基禎)은 조선인으로는 아니었지만 세계 제일의 이름을 날리지 않았는가? 우리도 계속 참고 노력하면 무엇이라도 큰일을 할 수 있다”며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같은 해 1~2월에도 자택 등에서 유종남 등 전주사범학교 학생들과 여러 차례 회합하여 교내와 일반 사회의 민족차별 대우, 한국 독립의 시기 등을 논의하면서 장차 독립에 대비하여 각자 스스로 신체를 단련해둘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이와 같이 1943년 8월경부터 1944년 2월 사이에 자신이 근무하던 전주사범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일제의 패망과 조선의 독립에 대비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여러 차례 협의를 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44년 11월 27일 전주지방법원(全州地方法院)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전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201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전주지방법원:1944. 1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