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5권(2020년 발간)
전라북도 전주군 사립 신흥학교(新興學校) 고등과(高等科) 4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1928년경 전주청년동맹(全州靑年同盟)에 가입하였다. 4월 26일 제1회 정기대회에서 도연맹(道聯盟) 출석대의원으로 선정되었다. 전주군 이동면(伊東面)의 전주청년동맹 조사부 위원을 맡았다. 전주청년동맹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던 1929년 6월 23일 전주경찰서(全州警察署)에 검속되었다가 25일에 방면되었다. 야마나시(山梨) 총독이 동진수리조합(東津水利組合)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전주를 통과할 때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예비검속의 일환이었다.
1929년 9월 신간회 전주지회(全州支會)의 서면대회(書面大會)에서 조직선전부원을 맡았다. 1930년 3월 전주청년동맹 서면위원회에서 조사연구부장으로 선정되었다. 1931년 2월경 전주경찰서 고등계(高等係)에 체포되었다. 10월 30일에도 또 다시 체포되었다가 방면되는 등 여러 차례 예비검속을 당했다.
1931년 5월 ‘조선공산당재건 전주지구위원회’에 참가했다. 전주연초전매지국(全州煙草專賣支局)의 직공들을 대상으로 ‘혁명적 노동조합운동’을 전개하였다. 7월 20일 전주군 전주읍(全州邑) 노송정(老松町) 정우선(鄭又先) 집에서 직공 민장수(閔長壽) 등과 함께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이후 3개월 동안 매주 토요일마다 회합하여 ‘노동자의 임금이 낮은 것은 자본가의 착취로 인한 것인데, 이 착취를 없애기 위해서는 공산제 사회를 건설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전주연초전매지국 직공들 사이에 단체를 조직해야 한다’는 내용 등을 협의하였다.
1932년 2월 중순 이동면 검암리(劒岩里) 자택에서 김춘배(金春培)와 함께 3.1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같은 달 25일에 ‘3.1투쟁 준비회’를 열기로 했다. 준비회 참석 인원으로 연초전매지국 직공 대표로 민장수를 선정하고, 이들과 함께 2월 25일 당일에 이동면 덕진지(德津池) 부근에서 준비회를 개최하였다.
이와 같이 활동하다가 1932년 봄 무렵 ‘전북공산당 재건운동 사건’에 연루되어 전주경찰서에 체포되었다. 1933년 12월 5일에야 예심(豫審)이 종결되었다. 김철주(金鐵柱) 등 40여 명과 함께 공판에 회부되었다. 1934년 3월 31일 전주지방법원(全州地方法院)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및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전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8월 27일에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9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동아일보(東亞日報)(1928. 4. 29, 1929. 3. 13, 6. 26, 6. 28, 1931. 3. 4, 11. 5, 1933. 12. 8, 1934. 3. 20)
- 판결문(判決文)(전주지방법원 형사부:1934. 3.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