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31년 5월경 김철주(金鐵柱), 한종식(韓鍾植) 등이 주도해 조선공산당 재건과 관련한 비밀결사 전주지구위원회(全州地區委員會)를 조직했다. 이들은 동지 포섭을 위해 지역별로 반(班)을 만들고 책임자를 선정했으며, 공산주의 선전물을 10일 간격으로 10여 차례에 걸쳐 발행했다.
1931년 7월 하순경 양운성은 전주청년동맹(全州靑年同盟)에 가입해 활동했다. 이때 김철주의 권유로 조선공산당 재건 전북지역 운동을 함께할 청년들을 포섭하는 데 참여했다. 특히 전주 남문을 중심으로 청년들을 포섭하는 반을 담당했다. 10월경에는 한종식 집, 박판돌기(朴判乭基) 집 등에서 최월상(崔月上), 윤기환(尹基煥), 김우영(金宇泳), 박병기(朴炳琪), 김영주(金泳柱), 김철주의 아내 임부득(任富得)과 조직 양성을 위한 조선공산당사 당조직론, 1928년 국제공산당대회가 채택한 ‘조선문제에 관한 12월 테제’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양운성은 1930년 2월 전라북도 전주 시내에 항일적 격문이 붙은 사건에 연루돼 서울에서 전주로 이송됐다. 이후 조선공산당 재건과 관련해 전주를 중심으로 공산주의 운동을 하다가 1931년 10월 30일경 체포됐다가 1932년 1월 17일 다시 체포됐다. 1934년 3월 31일 전주지방법원(全州地方法院)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및 정치(政治)에 관한 범죄(犯罪)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 4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전주지방법원:1934. 3. 31
- 동아일보(東亞日報)(1931. 11. 5, 1933. 12. 8, 1934.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