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의병장 정용기(鄭鏞基)가 이끄는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여하여 군기(軍器) 및 식량(食糧)의 운반을 담당하였다. 산남의진은 1906년 3월 경북 영천(永川)에서 정용기(鄭鏞基)가 조직한 의병 진영이다. 고종황제의 밀지를 받은 시종관 정환직(鄭煥直)은 아들 용기에게 의병을 일으키도록 명하였다. 이에 정용기는 고향인 영천에서 이한구(李韓久)·손영각(孫永珏) 등을 규합하여 창의하였다. 1906년 4월 28일 일본군 토벌대에 패한 신돌석의진(申乭石義陣)을 돕기 위해 영해로 진군하다가 경주 우각(牛角)에서 경주진위대에 체포되었다. 이리하여 산남의진은 중군장 이한구에 의해 이끌려나가다가 7월 하순경 해산하고 말았다. 한편 부친 정환직의 주선으로 석방된 정용기는 1907년 4월 재기하여 영해·청하·청송·포항 등지를 전전하며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1907년 8월 말 부친 정환직의 서울진공작전 구상에 따라 북상 계획을 준비하던 정용기는 9월 초 청하군 죽장면 입암에서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중군장 이한구, 참모장 손영각, 좌영장 권규섭(權奎燮) 등 수십 명의 장령들과 함께 전사하였는데 이것이 입암전투(立巖戰鬪)이다. 권청송은 1907년 음력 8월 28일 정용기가 지휘하는 산남의진에 참가하였다. 그는 9월 1일 청하군 죽장면 입암에서 벌어진 입암전투에서 담군(擔軍)으로 군기 및 식량을 운반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09년 2월 10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유형(流刑) 2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大邱地方裁判所:1909. 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