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19년 3월 19일 경북 영덕군(盈德郡) 지품면(知品面) 원전동(院前洞) 장터에서 예수교 교인 주명우(朱明宇)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이날은 장날로 평소 조선의 독립을 희망해 오던 주명우는 오전 11시 30분경동지 수십 명을 규합하여 자신이 직접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깃발을 앞세우고 ‘한국독립의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해 죽을 때까지 멈추지 말자’고 연설하며 군중을 격려하였다.
이에 고무된 시위군중은 대한독립만세를 목이 터져라 외치며 시위행진을 시작하였다. 박기동도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있었으므로 동지 김주일(金周日), 정순용(鄭順用) 등과 함께 시위대열의 선두에 서서 적극 동참하였다. 시위대열이 주재소에 이르자 총검으로 무장한 일본 경찰은 주동자를 체포하고 시위군중을 강제로 해산시켰다.
박기동은 이날의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4월 19일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9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3권 436~437면
- 判決文(大邱地方法院 盈德支廳:1919. 4.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