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8년 전남 장성(長城)·담양(潭陽)·영광(靈光)·함평(咸平)·광주(光州) 등지에서 김태원의진(金泰元義陣), 조경환의진(曺京煥義陳)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를 결성한 의병장 기삼연(奇參衍)이 1908년 2월 초에 체포되어 순국하자 선봉장이었던 김태원은 독자적인 의진을 편성하여 활동하였다. 1908년 4월 25일 의병장 김태원이 광주 어등산(魚登山)에서 전사하자, 이운선은 김태원의진의 선봉장이 이끄는 조경환의진에 합류하였다. 이들은 1909년 1월 10일 광주 운수동(雲水洞)에서 일본군 수비대의 기습을 받아 2시간 동안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조경환 의병장을 비롯한 의병 20명이 전사하고, 이운선 등 10명이 체포되었다.
1909년 5월 5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내란 및 폭동죄로 유형(流刑) 7년을 받고 공소했으나, 같은 해 6월 5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되었다. 1910년에 대사령(大赦令)에 의해 풀려났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大邱控訴院 : 1909. 6. 5)
- 刑事控訴事件簿
- 受刑人名簿
- 刑事執行事件簿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70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