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8년 음력 3월부터 1909년 음력 6월경까지 전남 담양(潭陽)ㆍ장성(長城), 전북 순창(淳昌) 등지에서 신보현의진(申甫鉉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9년 4월 순창 일대에서 활동하던 신보현의진은 이성화의진(李成化義陣)과 합세하였다. 이성화의진은 1908년 3월 고부(高阜)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6월에는 정읍(井邑)ㆍ태인(泰仁)ㆍ고부ㆍ순창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그리고 1909년 1월부터 2월까지 9회에 걸쳐 기습작전으로 일제 기관을 공격하였다. 1909년 4월 신보현의진과 이성화의진이 합세하여 순창군 가포곡(加布谷) 일대에서 일본군과 접전을 벌였고, 5월 1일 태인군 인곡면(仁谷面), 5월 19일 고부군 벌말면(伐末面), 6월 20일 고부군 우덕면(優德面) 등지에서 일본 군경과 전투를 벌였다.
이부업은 의병장 신보현의 창의(倡義) 소식을 듣고, 1908년 음력 3월 그의 부하로 들어가 신보현 등 의병 300여 명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전남 담양ㆍ장성, 전북 순창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벌이다 체포되었다.
1909년 10월 8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2년을 받고 10개월여의 옥고를 치른 뒤, 1910년 8월 대사령(大赦令)에 의하여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09. 10. 8)
- 受刑人名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