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병천에서의 3.1운동은 홍일선(洪鎰善) 등의 주도로 4월 1일 병천시장에서 일어났다. 오후 1시경 ‘대한독립’이라고 쓴 큰 깃발을 세우고 조인원이 군중들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군중들은 태극기 500~600개를 흔들며 시장 일대를 활보하며 ‘독립만세’를 열창하였다.
박봉래는 3월 1일 이후 전국 각지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운동이 전개되는 것을 알았다. 4월 1일 오후 1시 경 병천시장에 나가 그곳에 있던 군중들과 함께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만세시위가 격화되자 병천주재소 헌병 5명이 총을 쏘며 시위를 진압하려 하였다. 천안에서 헌병 하사 1명과 보병 장교 이하 6명이 출동하였다. 이 만세시위에 대한 탄압으로 19명이 순국하고 43명이 부상을 당하였으며 24명이 체포되었다.
박봉래는 1919년 4월 1일 천안 갈전면 병천시장에서 시위군중과 함께 만세를 부르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5월 9일 공주지방법원의 유죄 판결에 대하여 공소를 제기했다. 1919년 6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 및 소요’로 징역 6월을 선고받았다. 1919년 9월 11일 “나의 행위는 조선 민족으로서 정의·인도에 기초한 의사의 발동으로 범죄가 아니다”라며 상고하였다. 1919년 9월 11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공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20년 2월 25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201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경성복심법원:1919. 6. 30)
- 판결문(고등법원:1919. 9. 11)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한국독립운동의 역사(한국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2009) 20권 22~2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