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12~1913년 경북 안동(安東)·영양(英陽) 일대에서 유시연의진(柳時淵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안동 출신의 유시연은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전국 각처에서 의병이 봉기하자 1906년 봄 경주 분황사(分皇寺)에서 열린 열읍(列邑) 의병 대표 모임에서 영남의병대장(嶺南義兵大將)으로 추대되었고, 1908년 여름까지 안동군 임동면(臨東面)을 중심으로 경북 북부와 동부 지역 일원에서 활동하였다. 이때 유시연은 안동군 임동면 대곡리(大谷里) 출신의 의병장 박인화(朴仁和)가 이끄는 박처사의진(朴處士義陣)과 영덕의 신돌석의진(申乭石義陣), 그리고 영양의 김성운의진(金成雲義陣) 등과 연결하여 일본군 토벌대를 공략하는 유격전을 감행하였다. 1908년 2월 28일 임동군 대전(大田)에서 일본군 토벌대에게 패한 후, 1908년 5월경 의병부대를 해산하였다. 1911년 만주로 망명하여 이상룡(李相龍)·김동삼(金東三)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1912년 군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입국하여 활동하던 중, 1913년 8월 체포되었다.
이승기는 유시연의진에 들어가 1912년 음력 4월 안동군 임동면(臨東面), 1913년 5월 안동군 임남면(臨南面) 지례동(知禮洞), 6월 2일에는 영양군 동면(東面) 대천동(大川洞)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14년 3월 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강도·상인(傷人)·공갈죄(恐喝罪)로 징역 1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大邱地方法院 : 1914. 3.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