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7년 7월부터 1908년 4월까지 노병대의진(盧炳大義陣), 조영운의진(趙英雲義陣)에 참여하여 충북 괴산(槐山)ㆍ음성(陰城)ㆍ청주(淸州)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대한제국의 육군 부위(副尉)였던 노병대는 1907년 8월 군대 해산 이후 해산 군인을 규합하여 경기도 광주(廣州)의 임용헌(林容憲), 충남 연산(連山)의 김운노(金雲老)ㆍ송창헌(宋昌憲) 등과 함께 속리산(俗離山)에서 봉기하였다. 노병대는 청주진위대(淸州鎭衛隊) 해산병으로 의진을 결성하고 충남 연산의 김운로의진(金雲老義陣), 경북 상주(尙州)의 조운식의진(趙雲植義陣) 등과 연합투쟁을 전개하였다.
모명순은 의병장 총인관(寵仁官)ㆍ노병대ㆍ조영운 등의 휘하에서 충북 괴산ㆍ음성ㆍ청주 등지에서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9년 3월 8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公州地方裁判所 : 1909. 3.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