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1919년 3월 4일 오전 11시 평남 성천군(成川郡) 성천읍(成川邑) 천도교구당 앞에 모인 군중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한 후 미리 준비하였던 태극기를 나누어 가지고 가두시위를 하였다. 시위 군중은 읍내 상부리(上部里) 헌병대를 향하여 나아갔다. 이들이 헌병대 정문 앞에 도착하자 일본인 헌병과 보조원 10여 명이 일렬횡대로 서 있다가 갑자기 군중에게 무차별 발포를 하여 20여 명이 순국(殉國)했다.
최인관은 체포되어 1919년 7월 3일 평양복심법원, 1919년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및 소요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2권 389~392면
- 判決文(高等法院:1919. 9.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