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9년 8월 충북 영동군(永同郡) 양내면(陽內面)에서 조석우의진(趙錫祐義陣)의 부장(副將)으로 활동하였다.
1909년 유력한 의병장들의 전사와 일본 군경의 탄압으로 의병 활동이 점차 위축되어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북 운봉(雲峰) 출신의 조석우는 1909년 8월 23일 충북 영동군 양내면 영국사(寧國寺)에서 장군선(張君先)ㆍ조덕장(趙德章)ㆍ권덕원(權德元) 등과 모임을 갖고 삼남대장(三南大將)이라 하여 총대장이 되었다. 그리고 장군선ㆍ조덕장ㆍ권덕원은 부장(副將), 이기덕(李起德) 등은 병졸(兵卒)이 되었다. 이들은 독립을 위해서는 일본인을 전부 살해하고 철도 정거장 등 일제의 침략 거점을 파괴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으고 격문을 띄우는 한편, 양남면(陽南面) 일대에서 군사를 모집하면서 거사를 준비하였다.
김명식은 조석우의진에 참여하여 각 처에 격문을 배포하고 주변 마을에서 15세 이상 40세 이하의 장정들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09년 9월 23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이른바 내란죄(內亂罪)로 유형(流刑) 2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公州地方裁判所 淸州支部 : 1909. 9. 23)
- 朝鮮總督府官報(1910. 9.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