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허복순은 1910년 3월부터 9월까지 최성천의진(崔聖天義陣)에 가담하여 경북 예천(醴泉),안동(安東),영주(榮州)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8월 이후 의병투쟁이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격화됨에 따라 일본 군경의 무력탄압은 강화되었고, 1908년 5월에는 육군대신의 명령에 의해 제23연대와 제27연대를 증파하여 대대적인 의병토벌 탄압을 전개하였다. 따라서 대부대를 이끌고 활동하던 저명한 의병장들이 전사하거나 처형되었고, 그 예하 부대장들이 각기 소규모의 의병부대를 편성하고 산악지대를 근거지로 삼아 유격전을 통해 항전을 계속하였다. 경북 북부지역의 경우, 이강년의진의 중군장 김상태가 독자적으로 의병부대를 편성하고 그 휘하에 정경태,백남규,권용일,금달연,최성천 등을 거느리고 활동하였다.
최성천은 강원도 영월 출신으로 한명만(韓明萬)이라고도 하였다. 그는 부하 약 60명을 인솔하여 삼척지방에서 활동하다가 1910년부터 순흥,영주지방으로 들어와 김상태와 합하여 활동하였다.
허복순은 최성천의진의 일원으로 1910년 3월 26일 약 20여 명의 의병부대를 이끌고 예천군 위라면(位羅面)에서 일본상인 산내은삼랑(山內銀三郞)을 처단하였고, 동년 7월 중 안동군 남선면(南先面)에서 안동재무서 서기 권영주(權寧周)를 처단하였다. 그리고 동년 9월 20일 영주군 호문면(好文面)에서 조택수(趙宅洙)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허복순은 1911년 1월 9일 대구지방법원(大邱地方法院)에서 소위 강도(强盜) 및 강도살인죄(强盜殺人罪)로 교수형(絞首刑)을 선고받고, 1월 31일 대구공소원에서 공소가 기각, 2월 17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됨에 따라 3월 6일 대구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暴徒에 關한 編冊(1910)
- 判決文(大邱地方法院:1911. 1. 9)
- 刑事事件簿(朝鮮總督府)
- 朝鮮總督府官報(朝鮮總督府, 1911. 3.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