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충북 제천(堤川) 출신으로 1907년 7월 10일 이강년의진(李康秊義陣)에 소속되
어 그 부장(部將) 김용현(金龍鉉), 조성윤(趙成潤)의 휘하에서 충주(忠州) 일원
에서 활동하였고, 1908년 음력 정월 채정청의진(蔡正淸義陣)에서 활동하였다.
이강년은 1896년 1월 11일 문경에서 창의하여 유인석의진(柳麟錫義陣)에 참가
하여 유격장(遊擊將)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 3월 재봉기하여 강원도와 충청도,
그리고 경북 북부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그리고 1908년 8월 한국 군대의 해산
이후 제천으로 들어가 민긍호부대(閔肯鎬部隊)와 합류하여 의병진을 재편성하
였고, 8월 19일 주천으로 이동하여 40여 의병진의 추대로 도창의대장(都倡義大
將)이 되었다. 8월 23일 충주성 공략에 실패한 이강년은 단양·풍기 등을 거쳐
9월 7일부터 9월 14일까지 문경지역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1월 13도창의대진
소(十三道倡義大陣所)의 서울진공작전 실패 이후, 동년 5월 강원도를 거쳐 경북
봉화 지역으로 진출한 이강년은 동년 5월 18일부터 전개된 서벽전투(西碧戰
鬪), 내성전투(乃城戰鬪), 재산전투(才山戰鬪) 등을 치루며 대일항전을 수행하였
다. 그러나 1908년 7월 2일 청풍 작성전투(鵲城戰鬪)에서 체포된 이강년은 평리
원에서 교수형을 선고받았고, 10월 12일(음 9. 19)일 순국하였다.
황경문은 1907년 7월 10일 이강년의진의 부장 김용현, 조성윤의 권유로 그 휘
하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그러나 동년 7월 15일 사고로 인하여 청풍에서 귀향했
다가 1908년 음력 정월 12일 평창군 금도(金道)에서 의병 채정청 등 20명을 만
나 그 휘하에서 종사하며 영월 일대에서 활동하다 체포되었다.황경문은 소위 폭동죄(暴動罪)로 기소되어 1908년 9월 4일 공주지방재판소에
서 태형(笞刑) 100도(度)에 처해졌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公州地方裁判所:1908. 9. 4)
- 刑事事件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