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7년 이강년의진(李康秊義陳)에 포군(砲軍)으로 참여하여 일본 경찰과 교전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일제는 1907년 6월 헤이그특사를 빌미로 배일의식이 강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순종을 즉위시켜 한국 식민지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다. 일제 통감부는 정미칠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한국통치권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나아가 군대해산을 단행하여 한국의 무장력을 해체했다. 1907년 고종 황제가 강제 퇴위하고 군대가 해산하면서 해산 군인을 중심으로 정미의병항쟁이 시작되었다. 이강년은 을미의병 이후 유인석(柳麟錫)의 문하에서 학문에 전념하던 중 1907년 고종 황제 퇴위를 전후하여 비밀칙령을 받고 제천(堤川)에서 항일의병항쟁에 나섰다.
강수원은 1907년 음력 7월 이강년의진에 참여하여 포군으로 편입된 후 화승총 1정을 수령하고 각지를 다니며 활동하였다. 같은 달 14~15일경 경북 영춘군(永春郡) 읍내 부근 방두리(方頭里)에서 이강년 의병장의 명에 따라 동료 100여 명과 함께 일본 순사와 교전하여 순사 2명을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10년 4월 1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살인죄로 징역 15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던 중 1914년 칙령 제104호에 의해 징역 11년 3월, 1915년 칙령 제202호에 의해 징역 8년 5월 8일로 감형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公州地方裁判所 : 1910. 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