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김억쇠는 경북 봉화 출신으로 정경태의진(鄭敬泰義陣)에 참여하여 봉화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정경태는 강원도 춘천(春川) 출신으로 1907년 음 7월 23일부터 성익현의진(成益賢義陣)의 도총장(都總將)과 중군장(中軍將)이 되어 강원도 울진(蔚珍)·평해(平海)·삼척(三陟)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음 9월 12일 성익현의진이 이강년의진(李康年義陣)과 제휴함에 따라 정경태는 이강년의 예하 부대장들과 함께 활동하였다. 1908년 1월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의 서울진공작전 실패 이후, 동년 5월 이강년의진이 강원도를 거쳐 경북 봉화 지역으로 진출하자 성익현과 정경태는 이강년의 예하 부대장들과 함께 봉화군 서벽리(西碧里)에 주둔하였다. 이리하여 이강년의진이 동년 5월 18일부터 전개된 서벽전투(西碧戰鬪)·내성전투(乃城戰鬪)·재산전투(才山戰鬪) 등을 치르며 대일항전을 수행하는 데 참여하게 되었다. 1908년 6월 이후 성익현이 행방불명되자 정경태는 관동창의대장(關東倡義大將)이 되어 김상태(金相泰) 등과 함께 영주·풍기·순흥을 중심으로 유격전을 감행하였다. 1911년 6월 14일 일본군의 토벌작전으로 김상태가 체포된 뒤 정경태도 곧 체포되었다.
관동창의대장 정경태가 1908년 6월 이후 영주·풍기·순흥 등지에서 활동할 때, 김억쇠는 정경태의진에 가담하여 1909년 3월 초 봉화군 소천면(小川面)과 내성면(乃城面) 일대에서 군량미와 군수품을 모집하는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10년 9월 9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징역 10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大邱地方裁判所:1910. 9. 9)
- 봉화의 독립운동사(김희곤 외, 2007) 90~9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