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공적정보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951476
성명
한자 金永祚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국내항일 포상년도 2008 훈격 대통령표창
1935년 초부터 1943년 경까지 삼신교(三神敎) 포교(布敎)활동을 하였으며, 1943년 4월 초 일본군(日本軍)에 대해 유언비어(流言蜚語)를 퍼뜨리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징역 10월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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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일제하 민족적 색채를 띤 종교가 널리 퍼지게 되었는데, 김영조도 삼신교(三神敎)라는 종교를 믿게 되었다. 삼신교는 충청남도 논산군(論山郡) 두마면(豆磨面)에 사는 연정원(延鄭元)이 포교(布敎)한 것으로, 천(天)·지(地)·인(人)의 삼신(三神)에게 제사를 지내는 종파였다.

김영조는 1935년 초 삼신교를 믿게 되면서 같은 동리에 사는 이종철(李鍾喆) 등을 신도로 포교하였다. 그후에도 계속하여 삼신교의 종지를 전파하였으며, 1943년 3월 중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가천면(伽泉面) 창천동(倉泉洞) 이모(李某)의 집에서 같은 군 창천동(倉泉洞)에 사는 송영상곤(松永相坤) 등에게 삼신교의 종지를 설파하였다. 또한 김영조는 1943년 4월 초경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月恒面) 대산동(大山洞) 감혜사(感惠寺)의 승려 등 3명에게도 일제가 침략전쟁을 일으킨 사정을 말하고, 일제의 군대가 태평양과 동남아지역에서 패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김영조는 삼신교를 믿으면 민족독립을 달성할 수 있고 일제가 침략전쟁을 감행하였으나 동남아 각지에서 패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였다. 이에 일제는 김영조를 이른바 ‘유언비어’를 날조하였다고 하여 검거하였다. 그는 1943년 1월 3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이에 불복하여 상소, 1944년 1월 31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육군형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김영조는 대구형무소 등에서 옥고를 치른 후 1944년 6월 21일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判決文(大邱覆審法院:1944. 1. 31)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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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영조 창씨개명: 삼본길남(三本吉男) 경상남도 합천(陜川) -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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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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