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31년 봄부터 공산주의 관련 잡지를 읽고 이에 공감해 선의 독립을 위해 간도(間島)에 가서 공산주의 운동 연구를 결의했다. 같은 해 10월 1일 고향을 떠났으나 여비 부족으로 돌아왔다.
고향으로 돌아온 김길원은 10월 14일~18일 구룡포리 지역에서 청년들에게 공산주의와 조선독립 사상을 북돋우기 위해 종이에 연필로 ‘우리 조선 동포들에게’라는 제목 아래 무산자(無産者)의 비참한 사례를 서술했다. 이어 “우리 청년들이여, 공산주의로써 악마와 같은 사회를 타파하자. 공산주의로써 어서 빨리 유산자(有産者)에게서 권익을 빼앗아 무산자를 돕고, 서로 손을 잡고 독립만세를 부르자. 목숨을 아끼지 말고 피눈물을 흘리며 조선독립만세를 외치자. 저 러시아는 전 국민이 공산주의자가 되어 서로 돕고 협력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우리 조선도 공산주의가 되어 모두 독립을 위해 전진하자. 정부를 두려워하지 말고, 사회 타파에 성공하도록 노력하자. 독립만세는 우리들의 피눈물이 있는 만세이다. 조선 권세(權勢), 독립만세”라는 글을 작성했다. 이 문서를 같은 날 오후 11시경 구룡포경찰관주재소 앞 게시판에 붙였다.
김길원은 공산주의에 기반해 독립운동을 고취하는 문서를 작성해 게시했다가 체포됐다. 1931년 11월 17일 대구지방법원(大邱地方法院)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 횡령’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대구지방법원:1931. 11. 17)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