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이상훈은 1923년 일본 동경에서 인쇄직공으로 일을 하면서 재일 한인 노동자들의 권익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동운동에 참가하였다. 일본에서 한인 노동자들이 늘어나자 이들을 중심으로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在日本朝鮮勞動總同盟)이 조직되었다. 일본지역 최초의 한인 노동자 조직이었던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은 1920년대 중후반 재일 한인 민족해방운동의 합법 대중단체로 선두에서 투쟁하였다.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창립의 주도세력은 안광천(安光泉)·이여성(李如星) 등 일월회계가 주도하여 출범하였기 때문에 조선공산당 일본총국의 직접 지도 아래 발전을 거듭하였다.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은 노동자 중심의 반일 노동조합으로 경제적인 요구에 기초한 투쟁을 전개함과 동시에 다양한 정치투쟁을 수행하였다. 이같은 노력을 통해 1926년 10월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은 25개 노동조합, 9,900명의 조합원이 참가하는 거대한 조직이 되었다.
당시 이상훈은 조선노동총동맹 동경지부장을 맡고 있었는데, 1927년 8월부터 전개된 조선총독 폭압정치 반대운동과 치안유지법 철폐투쟁은 국내의 지원과 연계 속에서 식민통치의 부당성을 널리 알렸으며 대중의 호응을 받았다. 이에 일제 경찰은 조선공산당 일본총국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를 단행하여 이상훈은 일경에 체포되었다. 이후 이상훈은 동경의 시곡형무소(市谷刑務所)에서 5년 동안 옥고를 치르던 중 병에 걸려 1932년 2월 3일 보석으로 출감하였다. 출옥 후 그는 동경시청 대구보병원(大久保病院)에서 입원치료를 하였지만 그해 4월 11일 오전 7시에 사망하고 말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중앙일보(1932. 4. 19)
- 재일본 조선인 그들은 누구인가(한일민족문제학회, 2003) 94~9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