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경북 봉화에서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농업에 종사하면서 어린 시절부터 봉화에 있는 소년단체인 내성소년구락부(乃城少年俱樂部) 등 사회운동에 참여하였다. 그후 1928년 5월 유학을 목적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노동으로 고학을 하고자 하였다. 일본에서 엄종호는 1931년 6월경 허경인의 권유로 일본 전국노동조합협의회(全協)에 가입하여 토목건축 강동교분회(江東橋分會)에 소속되었다.
전협에 소속된 엄종호는 1932년 9월 최상준(崔相俊)과 전협 강동지구위원회(江東地區委員會) 재건에 대해 협의하였으며, 메이데이 등 각종 기념일을 이용하여 일반노동자에게 유인물 등을 배포하였다. 그후 1932년 1월 박희창(朴喜昌)의 권유로 일본공산당에 입당하여 강동교(江東橋) 조직원이 되었다. 당시 김치정(金致廷) 등에 의해 1932년 1월 1일 노동계급사(勞動階級社)라는 출판사가 조직되어 있었으며, 그해 5월에는 국내에서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의 일환으로 조선공산당재건투쟁협의회(朝鮮共産黨再建鬪爭協議會)의 일본출판부가 조직되어 있었다. 이에 엄종호는 1932년 9월 허경인의 권유로 조선공산당재건투쟁협의회 일본출판부 및 노동계급사에 가입하였다.
엄종호는 김치정 등과 1931년 11월 일제경찰에 체포되어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1933년 3월 4일 기소되어 풍다마형무소(豊多摩刑務所)에 수용되었다. 그후 1935년 10월 4일 동경형사지방재판소(東京刑事地方裁判所)에서 예심이 종결되어 사상 전향을 위장하여 보석 중 1936년 3월 징역 2년 집행유예 5년을 받고 석방되었다.
석방 후에 엄종호는 1936년 3월 제국갱신회(帝國更新會)에 가입하여 표면적으로는 사상전향자로 가장하고, 옛날부터의 동지인 이창정(李昌鼎), 김무영(金武英), 송이돌(宋二乭) 등과 다시 운동을 재개하였다. 엄종호는 김무영 등과 『중간(仲間)』이라는 잡지를 발행하였다. 그후 1936년 3월 영도간사(永島幹司)·김무영 등 6명과 전선통일전적합동간담회(戰線統一全的合同懇談會)를 개최하고, 코민테른 제7회 대회의 방침에 의거한 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였다. 이와 같이 사상 전향으로 위장하여 활동을 하던 엄종호는 일경에 체포되어 1936년 12월 7일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송국되었고, 1937년 6월 4일 동경구류소에 수용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思想月報(朝鮮總督府 高等法院 檢事局 思想部, 1933. 3.) 제2권 제12호 5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별집 제3집 516면
- 昭和特高彈壓史(明石博隆, 1975) 6권 144-147·170-171면
- 조선공산당재 전투쟁협의회사건 기소중지자 검거에 관한 건(1933. 6. 14) 思想에 關한 情報綴(2)
- 思想彙報(朝鮮總督府 高等法院 檢事局 思想部, 1936. 2) 제6호 177-192면, 제10호 182-183·195면, 제13호 203-206면
- 時代日報(1926. 4.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