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8권(2010년 발간)
정태옥은 1930년 8월경부터 경성중앙청년동맹, 경성목공조합(京城木工組合) 등에 가입하여 집행위원이 되어 노동운동을 하였다.
1931년 11월 중순경부터 3개월에 걸쳐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국제공산청년동맹 동양부위원회에 조선대표 자격으로 참가하였다.
1932년 1월 고려공산청년회 재건방침을 규정한 「조선 공청 청년 제군에게 고함(1월 서신)」이라는 테제 결정과정에 참여하였다. 동년 2월 블라디보스톡에서 코민테른으로부터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에 관한 지시를 받은 오기섭(吳淇燮)을 만나 운동방침을 협의, 3월 14일에 서울로 들어와 서울·인천 지역에서 공청재건운동에 착수하였다.
서울 지역에서의 공청재건운동은 우선 학생·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공청반(共靑班)을 조직하여, 각종 기념일에 격문을 살포토록 하였다. 3월 14일부터 4월 중순경까지 박성화(朴晟華)·진해룡(陳海龍)과 만나 「1월 서신」의 내용을 설명하고, 서울 조선공청재건운동에 함께 참여토록 권유하였다.
동년 8월 20일경, 전호직(全浩稷)에게 망국기념일(8월 29일), 국제청년데이(9월 첫 번째 일요일)에 투쟁을 독려하는 격문을 제작, 배포하도록 하였다. 8월 23일경, 진해룡·김일경과 협의한 후, 「제19회 국제청년데이 전조선농자농민학생청년제군」·「조선노동자농민 모두 피압박대중에게 제23회 일한병합기념일을 기(期)하여 격(檄)한다」라는 격문을 작성하였다. 격문에는 ‘타도 일본제국주의, 제국주의전쟁을 국내계급전쟁으로, 조선노동자농민혁명만세, 조선공청재건만세, 국제공청만세’, ‘일본제국주의의 파괴, 조선노동자농민 반제토지혁명만세, 소비에트동맹, 중국소비에트를 사수하자’는 등의 슬로건을 게재하였다.
한편 서울 외에 인천· 평양·부산 지역의 공청재건운동에도 노력하였다. 인천 지역에서의 공청재건운동은, 1932년 6월 15일경, 인천부 도산동에서 이두천(李斗天)·안문식(安文植)·신수복(愼壽福)과 만나 인천적색노동조합과 제휴하여 실시할 것을 협의하면서 비롯되었다. 이에 7월 15일경 월미도에서 신수복을 만나 인천에서 8월 1일 반전데이 투쟁격문을 작성 살포할 것을 협의, 동월 30일∼ 31일에 신수복의 소개로 평양사범학교 학생 이억근(李億根)·우종식(禹鐘植)과 함께 「노동자농민피압박대중살륙전 제2차제국주의전쟁 반대, 8·1 투쟁으로 타파하자」라는 제목으로 ‘일본제국주의 타도, 제국주의전쟁 반대, 소비에트와의 동맹·중국소비에트 사수, 중국공산당·공청·적색노조재건 만세’라는 등의 슬로건을 게재하고 조선 코뮤니스트적색노동조합재건투쟁위원회 명의의 격문 약 100매를 등사·출판하였다.
정태옥은 1932년 3월부터 서울·인천에서 ‘조선공청재건 경성·인천 조직준비위원회’를 결성하는 한편, 평양·부산 지역에도 관심을 갖고 활동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어 재건조직을 완수하지 못하였다.
1937년 6월 3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0년(미결구류 560日 통산)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그러나 같은 해 7월 24일 수형자 임인용(林仁用)이 간수를 상해하고 스스로 자해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이를 기화로 수형자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등 시위를 주동하여 1941년 8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요로 징역 4년을 추가로 받았다. 또한 1942년 5월 11일 사역에 나갔을 때 간수가 한눈을 파는 틈을 타서 탈출하여 1942년 7월 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도주·주거침입·건물침입·절도·강도 등으로 징역 5년을 받고, 복역 중 1945년 2월 12일 옥중 순국(殉國)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8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京城刑務所 囚人의 看守傷害에 관한 건(1939. 7. 27)思想에 關한 情報綴(4)
- 朝鮮中央日報(1934. 1. 1 1934. 5. 18·10. 6·10. 20, 1935. 4. 13·7. 31·8. 26·9. 16·9. 28·10. 5·11. 3· 11. 5)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37. 6. 30)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41. 8. 30)
- 사상휘보 제4호(1935. 8. 31)·제5호(1935. 11. 30)·제6호(1936. 2. 29) 4면, 제7호(1936. 5. 31), 제8호(1936. 8. 31)·제9호(1936. 11. 30) 7면, 제10호(1937. 2. 28)제10호(1937. 5. 31) 2면
- 한국사회주의인명사전(창작과비평사, 1996) 444면
- 朝鮮重大思想事件經過表(사상휘보 제3호, 조선총독부 고등법원 검사국 사상부, 1935. 5. 31) 4면
- 東亞日報(1934. 10. 10·10. 19, 1935. 6. 12, 9. 27·9. 28, 1937. 6. 11·6. 12·6. 15)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判決文(高等法院:1943. 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