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조삼용은 대한제국의 해산 군인 출신으로 이명상의진(李明相義陣)에 참가하여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희생되었다.
이명상은 충북 단양 출신으로 을사늑약 이후 의병 투쟁을 결의하고 거의하였다. 그 후 김상한의진(金商翰義陣)에 투신하여 소모장(召募將)으로서 청풍(靑風)·단양(丹陽)·충주(忠州)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7년 8월 김상한이 이강년의진(李康秊義陣)과 규합한 뒤 독립된 의병진을 편성하여 군사 이진하(李晉夏)·중군장 김규철(金奎哲)·좌군장 민영팔(閔泳八)·우군장 이영승(李榮承)·서기 이치정(李致鼎) 등으로 진영을 정비하였다. 1909년 5월경 김상한과 더불어 부하 60여 명을 거느리고 청풍·담양·임실·나주·풍덕·중계·순천·보성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1909년 겨울 영주 순흥(順興)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전사하였다.
조삼용은 경성기병대(京城騎兵隊) 군조(軍曹)였으나 1907년 6월 해산 이후 이명상의진에 참가하였다. 1908년 6월 8일 이명상의진이 경북 북부지역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선발대로 박양현(朴養顯)과 함께 풍기군(豊基郡) 상리면(上里面현 예천군 상리면) 명봉사(鳴鳳寺)에 도착하여 식사를 하던 중 풍기주재소 순사에게 체포되었다. 동년 6월 19일 영주수비대(榮州守備隊)에서 취조를 받던 중 탈출하다가 체포되어 총살·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暴徒에 關한 編冊(警務局), 榮秘發 제115-1號(1908. 6. 19)
- 暴徒에 關한 編冊(警務局), 榮秘發 제115號 匪徒逮捕에 關한 件(1908. 6.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