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1908년부터 1919년까지 성명회(聲明會)를 비롯하여 공교회(孔敎會), 창의소(彰義所) 등에 가입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안종석은 1908년 음(陰) 4월경 노령 블라디보스톡으로 건너가 성명회에 가입하여 총재 유인석(柳麟錫)의 명으로 1910년 음 8월 일본관헌의 실정 등을 정탐할 목적으로 국내의 원산(元山)에 들어와 활동하였다.
성명회는 러시아 연해주의 독립운동 세력들이 1910년 을사늑약의 무효를 선언하기 위해 조직한 단체이다. 경술국치 직전인 1910년 6월 십삼도의군(十三道義軍)의 중심 인물들인 유인석(柳麟錫),이범윤(李範允),이상설(李相卨) 등이 주축이 되어 결성되었다. 성명회는 국망을 당한 한민족의 울분과 독립의 비장한 결의를 담은 취지문을 발표하였으며, 일본 정부에는 국제공약의 배신을 맹렬히 규탄하는 성토문(聲討文)을 보내고, 열강의 각국 정부에는 '합병무효'를 선언하는 전문과 선언서를 보내기로 결의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안종석은 1914년 음력 정월 경에는 간도(間島) 국자가(局子街)에서 공교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던 중 성명회원 이성림(李聲林) 등을 만나 국권회복의 방안에 대하여 밀의하였다. 1915년 음 7월 길림성(吉林省) 동녕현(東寧縣)의 민배식(閔培植) 등과 창의소를 설치하여 사령관(司令官)을 지냈고, 동년(同年) 음(陰) 10월 부하 70명을 거느리고 두만강 부근으로 전진하다 러시아 기병(騎兵)과 격전한 일도 있었다.
안종석은 1916년 2월 중국관헌에 체포되었으나, 이듬해 4월 함흥지방법원 검사국에서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된 후, 1919년에는 의병대장으로 활동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每日申報(1917. 4. 3)
- 신한민보(1917. 5. 3)
- 安鐘奭 部下 携帶의 武器賣却 및 部下 氏名에 관한 건 (機密公信 제4호, 1916. 1. 26),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5)
- 暴徒首領 安鍾奭 逮捕에 관한 건(朝憲密警 제76호, 1917. 3. 30),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6)
- 자료 한국독립운동(추헌수, 1971) 4권 1560면
- 중국지역 사료수집목록(국가보훈처) 제5권 129면
- 安鐘奭 暴動의 顚末에 관한 건(機密公信 제56호, 1915. 12. 16),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5)
- 圖們江方面 中國領 情況彙報(朝憲機 제73호, 1916. 2. 15),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5)
- 暴徒首領 安鍾奭 釋放에 관한 건(朝憲密警 제85호, 1917. 4. 16), 不逞團關係雜件-朝鮮人의 部-在滿洲의 部(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