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8년 일본 (日本) 신내천현 (神奈川縣) 에서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 (在日本朝鮮勞動總同盟) 에 참가하였으며, 동 조직이 해소된 뒤에는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日本勞動組合全國協議會) (전협 (全協) )에 가입하여, 1931년 4월 전협토건 (全協土建) 신내천지부 (神奈川支部) 를 결성하고 책임자가 되었으며, 1932년 신내천현 (神奈川縣) 에서 상남무산자소비조합 (湘南無産者消費組合) 을 결성하였고, 동년 8월 격문 을 배포하다가 검거되었으며, 1933년에는 동현 (同縣) 에서 상남무산자소비조합 (湘南無産者消費組合) 이사로 선임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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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문(檄文) : 1. 어떤 일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어 부추기는 글. 2. 급히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각처로 보내는 글. 3. 군병을 모집하거나, 적군을 달래거나 꾸짖기 위한 글.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김일성은 1928년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에서 재일본조선노동총동맹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동 조직이 해소되자,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全協]에 가입하였다. 1931년 4월 김범이(金凡伊) 등과 함께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 토건(土建) 가나가와지부를 결성하고 책임자가 되어, 9월경 한인 노동자의 실업구제를 위해 평작천(平作川) 개수공사 쟁의를 주도하는 한편, 다마천(多摩川) 사리채취(砂利採取) 투쟁, 반전 전단 배포 등 반제국주의 운동을 전개하였다. 1932년 가나가와현에서 상남무산자소비조합(湘南無産者消費組合)을 결성하고, 동년 8월 격문을 배포하다가 체포되었다.
출옥 후 1933년 전협 토건노조 지부원으로 활동하면서 5월경 상남무산자소비조합 이사로 선임되었다. 8월 초순 시즈오카[靜岡]현에 파견되어 시즈오카현 토건(土建)지부 결성 및 수야천(狩野川) 개수공사 노동쟁의를 일으키기 위해 활동하다가 또다시 체포되었다. 출옥 후 1938년경까지 가나가와현에서 활동하며 재차 체포되었고, 고문의 후유증으로 출옥하였으나, 동년 2월경 도쿄 하라마찌다[原町田]에서 사망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昭和特高彈壓史 제2권 51~52면
- 特高月報(內務省警保局保安課) 1932년 1월호 467면, 8월호 530면, 9월호 467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별집 3집 437면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강만길, 성대경 편, 1996) 110면
- 在日朝鮮人關係資料集成 2권 1473면
- 在日朝鮮人運動史(朴慶植, 1979) 375~376면
- 近代日本社會運動史人物大事典(編纂委員會, 1997) 제2권 32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