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일본에서 민족 차별에 반대하여 노동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태술은 1931년 11월 부산현(富山縣)에 거주하는 한인 노동자를 중심으로 조직된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全協] 부산토목건축노동조합(富山土木建築勞動組合)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부산토목건축노동조합이 유명무실화되자 1932년 한인 노동운동 지도자들과 협의하여 그해 8월 북륙지부준비회(北陸支部準備會)를 개최하였다. 9월에는 부산시(富山市)에 있는 친일단체 내선보국회(內鮮報國會) 간부 처단 계획에도 참가하였으며, 입산촌(立山村) 현영(縣營) 발전소(發電所) 공사장의 체불임금 획득운동 등에도 참가하였다. 이와 같이 정태술이 노동운동과 항일운동을 하고 있을 무렵 일제경찰은 재일 한인 노동조합원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를 시작하여 1931년 11월 5일 43명의 조합원이 체포되었다. 이때 일제의 검거를 피한 정태술은 1933년에 석천현, 복정시(福井市)로 들어가서 석천·복정지구 조직 재건운동을 하였다.
정태술은 1933년 8월에 검거되었고, 1934년 2월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검찰에 기소되어 명고옥형무소(名古屋刑務所)에 이송되었으나 곧 옥사하고 말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社會運動의 狀況(1932) 470·471면
- 在日朝鮮人運動史 8.15解放前(朴慶植, 1979) 374면
- 한국사회주의운동인명사전(강만길·성대경, 1996)
- 近代日本社會運動史人物大事典(編纂委員會, 1997) 3권 49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