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31년 3월 교토(京都) 사립 도시샤(同志社) 중학교 졸업 후 6월 말경 대구 근교에 있는 공동묘지에 모여 공산주의 연구를 위한 비밀결사 사회과학연구회를 조직했다. 이들은 11월까지 대구 근교 이외에 수성교(壽城橋) 부근의 천변 등지에서 모여 공산주의에 관해 토의했다. 12월에는 대구 내 각 중등학교에 반제(反帝) 격문이 배부된 일명 ‘대구연대격문사건’에 동참했다.
1932년 8월 이윤예(李允睿)를 책임자로 삼아 김만형(金萬炯), 이길보(李吉寶) 등이 탄광노동자를 대상으로 사동공작위원회를 조직했다. 이들은 하부조직으로 탄광 내에 비밀결사 혁진회(爀進會)를 조직했다. 또한 1933년 9월에는 독서회 형태인 지육회(智育會)를 조직해 공산주의 전파에 힘썼다.
1933년 당시 염필수는 평양의 숭실전문학교(崇實專門學校) 문과(文科) 1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그는 평양에서 조선공산당재건동맹 평양 사동공작위원회에 가입해 10월 하순경 노동조합을 지도했다. 이후에도 조선공산당재건동맹, 관동공산당사건 등에 관여하며 공산주의 운동을 지속했다.
염필수는 공산주의 연구 관련 비밀결사 활동을 하다가 체포됐다. 1932년 12월 2일 대구지방법원(大邱地方法院)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4년을 받았다. 이후 평양에서 노동자조합을 지도하며 공산주의 운동을 하다가 체포됐다. 경성지방법원(京城地方法院) 검사국(檢事局) 예심에서 면소 처분을 받고 1935년 5월 9일 서대문형무소(西大門刑務所)에서 출옥했다. 이후에도 염필수는 공산주의 운동을 계속하다가 1936년 2월과 5월에도 체포됐다가 석방됐다.
정부는 202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判決文)(대구지방법원:1932. 12. 2)
- 동아일보(東亞日報)(1932. 11. 25, 12. 3, 1935. 8.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