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 민족의 독립을 실현하기 위해 사상 강좌를 개최하고, 현 사회제도의 개혁을 목적으로 농민조합운동을 전개하였다.
백태식은 1931년 12월경 동지들과 함께 경남 창원군(昌原郡) 웅동면(熊東面)에서 지역청년들을 대상으로 사상을 선전하는 사회과학 강좌와 강연을 열었다. 그리고 1933년 3월경부터 독립운동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동지 54명과 함께 비밀결사 웅동적색농민조합(熊東赤色農民組合)을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체포되었다.
이로 인해 백태식은 1933년 6월 15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8월 집행유예 3년을 받고 석방되었다. 석방 후 1934년 10월 다시 체포되어 수개월 간 고초를 겪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犯罪人名簿(警察廳)
- 高等警察關係摘錄(慶尙南道警察部, 1936) 95면
- 朝鮮日報(1932. 4. 26)
- 東亞日報(1933. 3. 15, 6. 8, 1934. 10. 18, 10. 23, 11. 1, 11. 18, 1935. 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