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고종황제 장례를 계기로 상경한 안동 예안 인사들은 3월 1일 거족적으로 봉기한 민족운동의 정세를 살펴본 후 곧 고향으로 돌아왔다. 즉시 향내 동지들과 수차 밀의한 끝에 예안 장날인 3월 18일에 대대적으로 거사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사전에 이 정보를 탐지한 일본 경찰은 수비대까지 동원하여 예안 시가지를 철통같이 포위하였으므로, 수천의 군중은 좌절하였다.
이를 본 주도자 이동봉(李東鳳)이 비분강개하여 뛰어나오면서 ‘독립만세’를 큰 소리로 부르니 수천 군중이 이에 호응하여 몰려들었다. 조만인도 이 시위에 참여하였다. 시위군중들은 제지하는 일본 수비대를 물리치고 주재소로 몰려갔다. 때마침 예안선명학교·예안보통학교 학생이 수백 장의 태극기를 준비하여 군중 속에 던져 주었다. 시위군중이 더욱 용기를 얻어 주재소를 에워싸고 창문을 파괴하자 일본 수비대가 총을 난사하여 사상자가 속출하였다.
조만인은 예안의 3월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5일 대구지방법원(大邱地方法院) 안동지청(安東支廳)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정부는 2018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수형인명부(受刑人名簿)
- 3.1운동실록(運動實錄)(이용락, 1969) 74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