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8년 8월 전남 함평(咸平)ㆍ영광군(靈光郡)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벌이다 체포되어 유형(流刑) 종신(終身)을 받았다.
조선통감부 경무국에서 편찬한 「폭도에 관한 편책」에 김태원(金泰元) 의병장의 십장(什長)으로 활동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김태원 의병장은 전남 나주 출신으로, 1907년 후반부터 기삼연이 주도한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의 선봉장으로 활동하였다. 1908년 2월 기삼연 의병장이 체포ㆍ순국하자, 의진을 재편하여 1908년 전반 강력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는 동생 김율(金聿)과 의진을 나누어 형제 의병장으로 활동했는데, 「전남폭도사」에서는 이들을 1908년을 대표하는 의병장으로 평가하였다. 따라서 일제는 이들의 진압에 제2특설순사대(第二特設巡査隊)까지 편성하여 투입할 정도였다.
김태원 의병장은 1908년 4월 25일 전남 광주(光州)와 나주(羅州) 접경에 위치한 어등산(魚登山)에서 전사하였다. 김율 의병장 역시 이미 3월 29일 체포되어 구금 중이었는데, 형의 시신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피살, 순국하였다.
최재성은 김태원 의병장 생전에 그 의진의 십장으로 활동했고, 그 후 김태원 의병장을 계승한 오성술(吳成述) 의병장 혹은 조경환(曺京煥) 의병장의 휘하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된 것으로 보인다.
1908년 8월 29일 구류(拘留)되어 같은 해 9월 25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에서 이른바 내란죄(內亂罪)로 종신 유형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刑事控訴事件簿
- 暴徒 出沒과 騎兵 遭難의 件(1908. 8. 29) 暴徒에 關한 編冊(警務局)
- 朝鮮總督府官報(1910. 9. 5)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1980) 제9권 3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