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박중실은 함남 북청 출신으로 1907년 차도선의진(車道善義陣)에서 의병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탈출하다가 피살 순국하였다.
차도선은 함경남도 갑산(甲山) 출신으로 진위대(鎭衛隊) 하사로 복무하였다. 차도선은 대한제국의 군대 해산 후 1907년 8월 함경남도 풍산(豊山)에서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의병장이 되어 중대장 태양욱(太陽郁) 등과 함께 친일파 및 일진회원을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차도선의병부대는 북청,삼수,갑산 등지의 포수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었다. 이어서 차도선은 홍범도(洪範圖)와 함께 1907년 11월 15일 북청군 안평사 엄방동에서 70여 명의 의병으로 창의를 결의하였다. 그리고 차도선과 홍범도는 의병 70여 명을 7개 분대로 편성하고 친일주구인 일진회원 소탕을 선포하였다. 다음날인 16일 차도선 등은 북청군 안평면장이며 일진회 회원인 주도익(朱道翼)을 처단하고, 19일에는 일진회 회원인 안산면장 이쾌년(李快年). 20일에는 안산사에 거주하는 일진회 회원 최석우(崔錫禹),이종현(李鐘鉉),김창식(金昌植),김창로(金昌魯),이병필(李炳弼) 등 5인을 처단하였다. 그 후 차도선과 홍범도는 11월 22일 북청 후치령전투(厚峙嶺戰鬪), 12월 29일 삼수성전투(三水城戰鬪), 1908년 1월 10일 갑산읍전투(甲山邑戰鬪), 1월 23일 단천 운승리전투(雲承里戰鬪), 2월 22일 갑산 세곡전투(細谷戰鬪) 등을 통해 1907년 말부터 1908년 초까지 함경도 일원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박중실은 차도선과 홍범도의 의병부대에 참여하였다. 1907년 11월 15일 경 조직되는 차도선과 홍범도의 의병부대 70여 명은 모두 7개분대로 편성되었는데, 북청군 양평 출신의 박중실은 제5분대의 분대원이었다. 박중실은 1908년 9월 4일 북청경찰서에 체포되어 심문을 받던 중 탈출하다가 피살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暴徒에 關한 編冊(1908)
- 暴徒에 關한 編冊(1907)